
네 앞니에 낀 김이 신경쓰여
이렇게 죽다니, 천하의 은영은이! 서울 초호화 실버타운 최신식 안락사 캡슐에서 품위있게 맞이해야하는 내 최후가! 운수도 뭣 같이 없는 그녀는, 고향으로 오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한다. 비바람을 맞으며 궁상스러운 산책을 감행하다 비탈로 쭉 미끄러진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 오른손에 힘을 주려고 생각하는 순간 또 귀신이라도 들린 듯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장애가 생긴 이후 힘들게 된 치과의사도 잘리고 파혼까지 당했다. 정말 모든 것을 잃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곳에서 만난 착해 빠진 남자는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뭐라도 아는 듯이 달라붙어 호의를 베푼다. 싫진 않지만 수상하다. 세상에 아무 이유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다 사기꾼이니까. “신유덕이었어. 미친!” 이미 키스는 해버렸는데 어쩌나. 영은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후회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왜 예전 모습일랑 흔적도 없는거야! 뻔뻔하게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렸을 적 친구인 너랑 뭘 어쩌기도 애매하다. 너랑 나는 너무 달라. 네가 겨우 날 만나려고 이렇게 착하게 살아온 건 아닐거니까. 그치. 삼신할매가 부지깽이 들고 뜯어말릴 듯. 하지만 어떡하지. 네 곁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나의 추한 문제들은 이미 썩은내를 풍기기 시작했는데, 어쩌지. 네 곁을 떠나긴 싫지만 너에게 내 밑바닥을 보이기가 더 겁나. 은영은(33, 여자, 개명 전=은선재) 오수 끝에 치과대학에 합격한 개룡(개천에서 난 용). 자존감은 바닥이지만 자존심은 포기할 수 없는 그녀는 한미한 출신과 집안을 철저히 숨기며 부잣집 딸 행세를 한다. 분수에 겨워 뱁새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있는 척’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니까. “자세한건 검사해봐야하지만, 지금으로썬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같아. 정신적 억압이 심하면 그게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기 전까진. 자신의 콤플렉스를 외면하고, 제 3자가 되어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은 그녀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게 쌓일대로 쌓인 것인지, 결국엔 탈이 나고 만다. 지친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원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억압당한 자아를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으로 가득 채운 소원리스트를 ‘유덕’과 함께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깨닫는다. 아무리 모나게 굴어도, 틱틱 밀어내도, 그의 곧고 정직한 눈은 자신의 실패를 조롱하지 않는다. 바다같은 믿음을 주는 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지만, 언젠가 이 섬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신유덕(33, 남자) 자리도 섬에서 유명 김 양식장을 하는 소위 말해 금수저. 아니 김수저. 어렸을 적 첫사랑인 영은을 계속 그리워하지만, 그녀가 섬을 떠나 소식이 끊긴 이후 다시 만날 날 만을 고대했다. 우연히 그녀를 구한 후, 한눈에 영은을 알아보지만 그녀는 전혀 자신을 몰라보는 눈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돕는다. 오해가 풀린 후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그저 반가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오직 직진, 직진 뿐. “날 나무처럼 생각해. 선재 네가 필요할 때 와서 쉬어가. 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 있을게.” 의도하지 않아 더 순수하고 설레는 그의 마음은 마침내 얼음장 같은 영은까지 따숩게 녹인다. “신유덕,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한게 많냐?” “아, 알면 다친다고 하려고?” “어- 다치던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괜찮아. 너만 안 다치면 되지.” 이영수(29, 남자) 영은의 치과대학 동기. 4살 어린 연하남으로, 영은의 곁에서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왔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성격좋고 유복한, 누가 봐도 잘난 남자. 짝사랑 받으면 모를까, 해본 적은 죽어도 없을 듯한 호감형 나르시스트. 하지만 왜일까.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는 그녀에게 가랑비 옷 젖듯 물들어간다. “여자친구랑 주말에 카페 갔는데, 한번 먹어봐. 누나가 맛있다고 하면 다음 여친이랑 또 가려고.”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설프게 호감을 표하며 접근했다간 눈치백단 그녀의 철옹성이 자신을 저 먼 곳으로 밀어내 버릴 것을. 그렇게 곁에서 지켜만 보는 ‘안전한 남자’로 지낸지 N년 째. 아무 말도 없이 직장을 나간 그녀가 파혼했다는 것을 안 후로 그녀의 흔적을 찾아 자리도 섬으로 찾아간다. “영은 누나 친구에요?” 치과 의자에 누운 유덕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친구, 아니에요?” “친굽니다.” “아하.” “......” “하. 난 또… 뭐라고.” 유덕은 갑자기 변한 말투에 놀라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영수가 씩 하고 웃었다. 이쁘장한 얼굴에 보조개가 살짝 졌다. “앞으로 종종 만나겠네요, 잘 부탁해요 형.” 테토녀/에겐남/첫사랑/90년대추억/전문직여주/기존세여주/까칠여주/욕망여주/다정남/직진남/순정남/능글서브남주/힐링로맨스/쌍방구원/서스펜스/드라마/가족물/상처/치유/로맨스코미디 nwhyeon0@naver.com
이렇게 죽다니, 천하의 은영은이! 서울 초호화 실버타운 최신식 안락사 캡슐에서 품위있게 맞이해야하는 내 최후가! 운수도 뭣 같이 없는 그녀는, 고향으로 오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한다. 비바람을 맞으며 궁상스러운 산책을 감행하다 비탈로 쭉 미끄러진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 오른손에 힘을 주려고 생각하는 순간 또 귀신이라도 들린 듯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장애가 생긴 이후 힘들게 된 치과의사도 잘리고 파혼까지 당했다. 정말 모든 것을 잃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곳에서 만난 착해 빠진 남자는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뭐라도 아는 듯이 달라붙어 호의를 베푼다. 싫진 않지만 수상하다. 세상에 아무 이유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다 사기꾼이니까. “신유덕이었어. 미친!” 이미 키스는 해버렸는데 어쩌나. 영은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후회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왜 예전 모습일랑 흔적도 없는거야! 뻔뻔하게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렸을 적 친구인 너랑 뭘 어쩌기도 애매하다. 너랑 나는 너무 달라. 네가 겨우 날 만나려고 이렇게 착하게 살아온 건 아닐거니까. 그치. 삼신할매가 부지깽이 들고 뜯어말릴 듯. 하지만 어떡하지. 네 곁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나의 추한 문제들은 이미 썩은내를 풍기기 시작했는데, 어쩌지. 네 곁을 떠나긴 싫지만 너에게 내 밑바닥을 보이기가 더 겁나. 은영은(33, 여자, 개명 전=은선재) 오수 끝에 치과대학에 합격한 개룡(개천에서 난 용). 자존감은 바닥이지만 자존심은 포기할 수 없는 그녀는 한미한 출신과 집안을 철저히 숨기며 부잣집 딸 행세를 한다. 분수에 겨워 뱁새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있는 척’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니까. “자세한건 검사해봐야하지만, 지금으로썬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같아. 정신적 억압이 심하면 그게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기 전까진. 자신의 콤플렉스를 외면하고, 제 3자가 되어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은 그녀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게 쌓일대로 쌓인 것인지, 결국엔 탈이 나고 만다. 지친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원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억압당한 자아를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으로 가득 채운 소원리스트를 ‘유덕’과 함께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깨닫는다. 아무리 모나게 굴어도, 틱틱 밀어내도, 그의 곧고 정직한 눈은 자신의 실패를 조롱하지 않는다. 바다같은 믿음을 주는 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지만, 언젠가 이 섬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신유덕(33, 남자) 자리도 섬에서 유명 김 양식장을 하는 소위 말해 금수저. 아니 김수저. 어렸을 적 첫사랑인 영은을 계속 그리워하지만, 그녀가 섬을 떠나 소식이 끊긴 이후 다시 만날 날 만을 고대했다. 우연히 그녀를 구한 후, 한눈에 영은을 알아보지만 그녀는 전혀 자신을 몰라보는 눈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돕는다. 오해가 풀린 후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그저 반가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오직 직진, 직진 뿐. “날 나무처럼 생각해. 선재 네가 필요할 때 와서 쉬어가. 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 있을게.” 의도하지 않아 더 순수하고 설레는 그의 마음은 마침내 얼음장 같은 영은까지 따숩게 녹인다. “신유덕,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한게 많냐?” “아, 알면 다친다고 하려고?” “어- 다치던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괜찮아. 너만 안 다치면 되지.” 이영수(29, 남자) 영은의 치과대학 동기. 4살 어린 연하남으로, 영은의 곁에서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왔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성격좋고 유복한, 누가 봐도 잘난 남자. 짝사랑 받으면 모를까, 해본 적은 죽어도 없을 듯한 호감형 나르시스트. 하지만 왜일까.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는 그녀에게 가랑비 옷 젖듯 물들어간다. “여자친구랑 주말에 카페 갔는데, 한번 먹어봐. 누나가 맛있다고 하면 다음 여친이랑 또 가려고.”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설프게 호감을 표하며 접근했다간 눈치백단 그녀의 철옹성이 자신을 저 먼 곳으로 밀어내 버릴 것을. 그렇게 곁에서 지켜만 보는 ‘안전한 남자’로 지낸지 N년 째. 아무 말도 없이 직장을 나간 그녀가 파혼했다는 것을 안 후로 그녀의 흔적을 찾아 자리도 섬으로 찾아간다. “영은 누나 친구에요?” 치과 의자에 누운 유덕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친구, 아니에요?” “친굽니다.” “아하.” “......” “하. 난 또… 뭐라고.” 유덕은 갑자기 변한 말투에 놀라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영수가 씩 하고 웃었다. 이쁘장한 얼굴에 보조개가 살짝 졌다. “앞으로 종종 만나겠네요, 잘 부탁해요 형.” 테토녀/에겐남/첫사랑/90년대추억/전문직여주/기존세여주/까칠여주/욕망여주/다정남/직진남/순정남/능글서브남주/힐링로맨스/쌍방구원/서스펜스/드라마/가족물/상처/치유/로맨스코미디 nwhyeon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