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9/23 습작 예정]
밤눈을 잃은 뒤, 어둠 속에서는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이 까맣게 물든 동네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앞에 들이 밀어진 내 손가락 하나 볼 수 없으니, 밤에 내 눈에 뭔가 보인다면 그건 필시 귀(鬼)일 거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둠 속에서 뭐가 눈에 보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여운은 흰 티셔츠 아래로 오소소 돋은 닭살을 쓸어내리며 눈앞의 무언가와 시선을 맞췄다. “너, 뭐야.” 분명 조금 전까지 제가 의자에 앉혀줘야만 했던 아이는, 이제는 스스로 의자에서 내려와 저를 멀뚱히 보고 있었다. 어째서 저 아이는 어둠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시야에 잡히는 걸까. 어느새 바싹 다가와 있는 아이를 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던 여운은 벽에 발이 닿고 나서야 자리에 멈춰 섰다. “…너, 사람 아니지.” 확신에 가까운 물음에, 아이는 처음으로 환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요괴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고, “너 지금 이게 무슨 꼴이야?” “왜? 여운이는 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의아한 목소리가 그럴 리 없는데,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원래 모습이야.” 나를 기쁘게 했으며, “그런 것들은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러니까 여운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없애 줄게.” “앞이 안 보여서 무서운 거면 밤이가 도와줄게. 내가 다 없애 준다고 했잖아.” 나를 슬프게 했다. “여운아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여운이는 지켜줄 거라고 했잖아.” 기억이 난다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밤이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여운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럼 그것도 기억나?” “……어떤 거?” “내가 시간을 벌 동안 멀리 도망쳐서 잘 숨어 있기로 한 거.” “다쳐서 조금 힘들겠지만, 잘할 수 있지?” 한밤은 아주 작게 ‘미안’하고 속삭인 뒤 손안에서 연기가 되어 스르르 빠져나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이것보다 나아졌을까. “인간과 요괴는 함께할 수 없어.” “점점 잡귀나 요괴가 잘 붙는 체질이 될 거야. 그러다 언젠간 홀라당 몸을 빼앗기고 말겠지.” 아니면 그대로 무너졌을까. “…이룰 수 없기에 아름다운 사랑도 있다고?” “다 좆까라 그래, 그딴 사랑이 세상천지에 어딨어.” 설령 우리가 만나 불행해진다고 해도 난, “한밤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 “그럼 나와 내기를 하자.” 몇 번이고 너를 찾을 것이다. - *제목과 키워드, 작품소개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방해가 되거나 불쾌한 종류의 코멘트는 무통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표지 - MK님. (@mmui_p) *모든 문의는 linesir@naver.com 으로 주시길 바랍니다.
밤눈을 잃은 뒤, 어둠 속에서는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이 까맣게 물든 동네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앞에 들이 밀어진 내 손가락 하나 볼 수 없으니, 밤에 내 눈에 뭔가 보인다면 그건 필시 귀(鬼)일 거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둠 속에서 뭐가 눈에 보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여운은 흰 티셔츠 아래로 오소소 돋은 닭살을 쓸어내리며 눈앞의 무언가와 시선을 맞췄다. “너, 뭐야.” 분명 조금 전까지 제가 의자에 앉혀줘야만 했던 아이는, 이제는 스스로 의자에서 내려와 저를 멀뚱히 보고 있었다. 어째서 저 아이는 어둠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시야에 잡히는 걸까. 어느새 바싹 다가와 있는 아이를 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던 여운은 벽에 발이 닿고 나서야 자리에 멈춰 섰다. “…너, 사람 아니지.” 확신에 가까운 물음에, 아이는 처음으로 환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요괴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고, “너 지금 이게 무슨 꼴이야?” “왜? 여운이는 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의아한 목소리가 그럴 리 없는데,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원래 모습이야.” 나를 기쁘게 했으며, “그런 것들은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러니까 여운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없애 줄게.” “앞이 안 보여서 무서운 거면 밤이가 도와줄게. 내가 다 없애 준다고 했잖아.” 나를 슬프게 했다. “여운아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여운이는 지켜줄 거라고 했잖아.” 기억이 난다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밤이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여운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럼 그것도 기억나?” “……어떤 거?” “내가 시간을 벌 동안 멀리 도망쳐서 잘 숨어 있기로 한 거.” “다쳐서 조금 힘들겠지만, 잘할 수 있지?” 한밤은 아주 작게 ‘미안’하고 속삭인 뒤 손안에서 연기가 되어 스르르 빠져나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이것보다 나아졌을까. “인간과 요괴는 함께할 수 없어.” “점점 잡귀나 요괴가 잘 붙는 체질이 될 거야. 그러다 언젠간 홀라당 몸을 빼앗기고 말겠지.” 아니면 그대로 무너졌을까. “…이룰 수 없기에 아름다운 사랑도 있다고?” “다 좆까라 그래, 그딴 사랑이 세상천지에 어딨어.” 설령 우리가 만나 불행해진다고 해도 난, “한밤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 “그럼 나와 내기를 하자.” 몇 번이고 너를 찾을 것이다. - *제목과 키워드, 작품소개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방해가 되거나 불쾌한 종류의 코멘트는 무통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표지 - MK님. (@mmui_p) *모든 문의는 linesir@naver.com 으로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