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객잔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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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했던 수풀 사이로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빠르게 달리던 그녀는 풀숲 안으로 빨려가듯 주저앉았다. “윽!!” 허벅지 위로 파고든 화살촉은 여자의 다리를 깊게 찔렀는지, 하얀 드레스 위로 핏물이 적셔지는 데엔 긴 수를 세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잔잔한 바람을 따라 살랑이던 긴 잡초들이 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 “알락의 말을 새겨듣지 그랬어.” “…….” “죽여달라 재촉한건 너야.” 핏물이 번져가는 치마폭을 내려다보던 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남자의 차가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남자는 늘 저런 눈으로 제 눈과 마주치곤 했다. 뭐가 그리 불만인건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 섞는 것초자 혐오스럽다는 듯 굴던 남자는 오늘도 객잔에서부터 저를 따라온 것이다. ‘차라리 저 남자 손에 죽는게 나으려나.’ 릴리는 흐릿해져가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실론의 아들이라 했지.” “뭐?” 남자의 손목을 잡아 제 목을 움켜쥐게 만들며 말했다. “죽일거면 날 단숨에 죽여.”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남자의 시선이 거세게 흔들렸으나, 그건 기우라 여겼다. 아버지에게 붙잡혀 불행한 인생을 살다 죽는 것보다 이 남자에게서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설령 아버지의 손에 잡히진 않더라도 불운이 겹쳐 추잡스러운 놈들에게 희롱을 당해 죽을 바에야, 꼴리는대로 행동하는 이 남자에게 죽임 당하는 게 깔끔하다. 아쉽긴 하나 미련조차 남지 않는 인생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께서 이 허망스러운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겨준다면, 그래서 다음 생이란 게 존재한다면…. ‘물푸레 나무가 되면 좋겠다.’ 숲속에 살고 있는 귀여운 짐승들이 제 몸을 쉼터로 사용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다른 생명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 텐데. 풀내음과 옅은 흙냄새가 섞인 바람을 맞으며 점점 조여오는 남자의 손에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어깨 너머로 물푸레 나무에 핀 하얀 꽃들은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제길!” 그날, 남자의 작은 욕설을 들었더라면 그대로 기절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텐데. e-mail : chiliherry98@gmail.com

고요했던 수풀 사이로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빠르게 달리던 그녀는 풀숲 안으로 빨려가듯 주저앉았다. “윽!!” 허벅지 위로 파고든 화살촉은 여자의 다리를 깊게 찔렀는지, 하얀 드레스 위로 핏물이 적셔지는 데엔 긴 수를 세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잔잔한 바람을 따라 살랑이던 긴 잡초들이 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 “알락의 말을 새겨듣지 그랬어.” “…….” “죽여달라 재촉한건 너야.” 핏물이 번져가는 치마폭을 내려다보던 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남자의 차가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남자는 늘 저런 눈으로 제 눈과 마주치곤 했다. 뭐가 그리 불만인건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 섞는 것초자 혐오스럽다는 듯 굴던 남자는 오늘도 객잔에서부터 저를 따라온 것이다. ‘차라리 저 남자 손에 죽는게 나으려나.’ 릴리는 흐릿해져가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실론의 아들이라 했지.” “뭐?” 남자의 손목을 잡아 제 목을 움켜쥐게 만들며 말했다. “죽일거면 날 단숨에 죽여.”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남자의 시선이 거세게 흔들렸으나, 그건 기우라 여겼다. 아버지에게 붙잡혀 불행한 인생을 살다 죽는 것보다 이 남자에게서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설령 아버지의 손에 잡히진 않더라도 불운이 겹쳐 추잡스러운 놈들에게 희롱을 당해 죽을 바에야, 꼴리는대로 행동하는 이 남자에게 죽임 당하는 게 깔끔하다. 아쉽긴 하나 미련조차 남지 않는 인생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께서 이 허망스러운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겨준다면, 그래서 다음 생이란 게 존재한다면…. ‘물푸레 나무가 되면 좋겠다.’ 숲속에 살고 있는 귀여운 짐승들이 제 몸을 쉼터로 사용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다른 생명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 텐데. 풀내음과 옅은 흙냄새가 섞인 바람을 맞으며 점점 조여오는 남자의 손에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어깨 너머로 물푸레 나무에 핀 하얀 꽃들은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제길!” 그날, 남자의 작은 욕설을 들었더라면 그대로 기절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텐데. e-mail : chiliherr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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