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치솟는 별궁에서, 루시엘은 자신을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결국 뜨거운 불꽃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마주한다. “말한들 달라졌을까...? 넌 나를 이상하고 음침한 아이로 봤잖아. 모두가 그랬듯이...라는 뒷말을 소년은 삼켰다. 헬레나는 소년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소년과, 그를 감싸 안은 시녀. 서로를 외면했던 두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서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도련님을 다르게 대했을까.’ 눈물과 피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헬레나는 처음으로 깊이 후회했다. 이 비극에서 그를 구할수만 있다면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다고 ‘내가 조금만 더 용기 냈다면...내가 한 걸음만 더 다가갔다면...이 모든 일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 황제는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한 눈빛을 보냈다. ‘칼라일 장군이 선발해온 자들 중 한명이니 신분도 보장되어 있겠지.’ "네 실력이면 충분하겠군. 너를 부기사단장으로 임명하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자리로 걸어갔다. 비에른의 곁에 서 있던 헬레나는 그가 등장한 순간 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그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품고 있던 누군가, 루시엘이 떠올랐다. 슬픈 감정에 휩싸이려는 찰나, 그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공중에서 둘의 눈이 마주치고, 찰나의 순간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겨울 호수 위로 어쩌다 비치는 햇살처럼,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미소.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마치 씻기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감춘 듯, 슬픔과 거리감을 머금고 있었다. 헬레나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려 두 손으로 가슴께를 눌렀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애달프고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애달프고 슬픈걸까.' 과거의 시간들이 거칠게 뒤섞이며 그녀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황제의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별궁에 유폐된 황자. '더러운 피'라며 멸시당했던 자신의 주군. 그는 더 이상 별궁에 갇혀 있던 소년이 아니었다. 스스로 황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온 사내였다. enokaru@gmail.com
불길이 치솟는 별궁에서, 루시엘은 자신을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결국 뜨거운 불꽃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마주한다. “말한들 달라졌을까...? 넌 나를 이상하고 음침한 아이로 봤잖아. 모두가 그랬듯이...라는 뒷말을 소년은 삼켰다. 헬레나는 소년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소년과, 그를 감싸 안은 시녀. 서로를 외면했던 두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서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도련님을 다르게 대했을까.’ 눈물과 피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헬레나는 처음으로 깊이 후회했다. 이 비극에서 그를 구할수만 있다면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다고 ‘내가 조금만 더 용기 냈다면...내가 한 걸음만 더 다가갔다면...이 모든 일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 황제는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한 눈빛을 보냈다. ‘칼라일 장군이 선발해온 자들 중 한명이니 신분도 보장되어 있겠지.’ "네 실력이면 충분하겠군. 너를 부기사단장으로 임명하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자리로 걸어갔다. 비에른의 곁에 서 있던 헬레나는 그가 등장한 순간 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그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품고 있던 누군가, 루시엘이 떠올랐다. 슬픈 감정에 휩싸이려는 찰나, 그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공중에서 둘의 눈이 마주치고, 찰나의 순간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겨울 호수 위로 어쩌다 비치는 햇살처럼,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미소.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마치 씻기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감춘 듯, 슬픔과 거리감을 머금고 있었다. 헬레나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려 두 손으로 가슴께를 눌렀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애달프고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애달프고 슬픈걸까.' 과거의 시간들이 거칠게 뒤섞이며 그녀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황제의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별궁에 유폐된 황자. '더러운 피'라며 멸시당했던 자신의 주군. 그는 더 이상 별궁에 갇혀 있던 소년이 아니었다. 스스로 황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온 사내였다. enokaru@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