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신(槐神): 반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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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짇날의 밤, 눈보라 치는 궁궐. 폐세자 '단'은 피에 젖은 몸을 씻어내고자 용소에 들어갔다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작은 주머니를 주웠다. 안에 든 건 차갑게 식어버린 어린 제비였다. 생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에도, 소년은 죽어가는 생명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그것이 크나큰 실수였음을 깨달은 건, 처소의 창문 너머로 달빛이 스민 순간이었다. 제비가 아름다운 소녀로 변해서가 아니다. 소녀의 몸이 달빛처럼 요요하게 빛나서도 아니다. 소녀에게선,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맛있는 냄새가 났다. * * * (본문 中) 학창의를 덮어쓴 채 소년의 뒤를 따라 사뿐사뿐 걸어가던 소녀가, 문득 고개 돌려 흑매(黑梅)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더불어 이곳으로 도망쳐 온, 뿌리를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 무력하고 연약한 꽃가지를.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살아서,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맹렬한 의지를 품은 소녀의 핏빛 눈동자가 기묘하리만치 아름답게 반짝였다. 이어서 소녀는 다시금 고개 돌려, 자신에게 기꺼이 겉옷을 내어주고 얇은 침의 차림으로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는, 바닥의 그림자조차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아름답고도 다정하기 그지없는 린 일족의 폐세자를. e-mail: mingmean@naver.com

삼짇날의 밤, 눈보라 치는 궁궐. 폐세자 '단'은 피에 젖은 몸을 씻어내고자 용소에 들어갔다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작은 주머니를 주웠다. 안에 든 건 차갑게 식어버린 어린 제비였다. 생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에도, 소년은 죽어가는 생명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그것이 크나큰 실수였음을 깨달은 건, 처소의 창문 너머로 달빛이 스민 순간이었다. 제비가 아름다운 소녀로 변해서가 아니다. 소녀의 몸이 달빛처럼 요요하게 빛나서도 아니다. 소녀에게선,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맛있는 냄새가 났다. * * * (본문 中) 학창의를 덮어쓴 채 소년의 뒤를 따라 사뿐사뿐 걸어가던 소녀가, 문득 고개 돌려 흑매(黑梅)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더불어 이곳으로 도망쳐 온, 뿌리를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 무력하고 연약한 꽃가지를.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살아서,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맹렬한 의지를 품은 소녀의 핏빛 눈동자가 기묘하리만치 아름답게 반짝였다. 이어서 소녀는 다시금 고개 돌려, 자신에게 기꺼이 겉옷을 내어주고 얇은 침의 차림으로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는, 바닥의 그림자조차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아름답고도 다정하기 그지없는 린 일족의 폐세자를. e-mail: mingm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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