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마녀와 악마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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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보다 훨씬, 훨씬 더 옛날에 말이다 인간이 아직 산을 넘지 못하던 시절. 산엔 신들이 살았고, 그 틈엔 요괴와 정령들이 깃들어 있었지. 태초라 불리는 그 시대엔, 말 한 마디로 계절이 바뀌고, 한숨 한 줄기에 안개가 들고 났다. 그 시절, 어느 날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 천둥이 없었고, 번개도 없었어. 그저 푸르고도 뜨거운 불이, 매화가 피던 봉우리 하나를 집어 삼켰단다. 그날 이후, 그 마을의 산 허리의 매화는 분홍이 아닌 푸른 빛으로 피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석화촌(昔火村), ‘옛날에 불이 내려앉은 마을’이라 불렀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불이 내려앉은 마을. 그 불이 다시 타오를 줄은, 아무도 몰랐지. . . . 바람이 요동쳤다. 사방은 매화향이 아닌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마을 아래선 붉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은 피를 흘렸고, 땅은 숨죽였다. 그 가운데—나는 서 있었다. 초록빛 저고리 위로, 검붉은 치마 자락이 흩날렸다. 그 위엔 피가 낭자 했다. 물감을 들이부은 듯, 혼례복은 진홍으로 물들어 있었고 머리 위로 얹은 족두리 사이로도, 핏줄이 흐르듯 선혈이 흘렀다. 금실로 수놓은 장식들 사이로 번진 피는 마치 붉은 매화가 다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너무도 아름다워서—기이했다. 붉은 손등엔 누군가의 살점을 찢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 손엔 칼이 쥐어져 있었다. 끝이 무뎌질 정도로 찔렀고, 베었고, 피는 식었지만 그 끈적임은 여전히 내 살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 등뒤로 뒤따라오던 마을 사람들이 외쳤다. “마녀다! 저 계집은 마귀한테 영혼을 팔았어!” . . 오늘은, 내 혼례 날 이었다. 신랑은 죽었다. 신부는 도망쳤다. 그리고, 핏빛 마녀가 태어났다. 핏빛 하늘 아래,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웠다.

옛날 옛적에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보다 훨씬, 훨씬 더 옛날에 말이다 인간이 아직 산을 넘지 못하던 시절. 산엔 신들이 살았고, 그 틈엔 요괴와 정령들이 깃들어 있었지. 태초라 불리는 그 시대엔, 말 한 마디로 계절이 바뀌고, 한숨 한 줄기에 안개가 들고 났다. 그 시절, 어느 날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 천둥이 없었고, 번개도 없었어. 그저 푸르고도 뜨거운 불이, 매화가 피던 봉우리 하나를 집어 삼켰단다. 그날 이후, 그 마을의 산 허리의 매화는 분홍이 아닌 푸른 빛으로 피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석화촌(昔火村), ‘옛날에 불이 내려앉은 마을’이라 불렀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불이 내려앉은 마을. 그 불이 다시 타오를 줄은, 아무도 몰랐지. . . . 바람이 요동쳤다. 사방은 매화향이 아닌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마을 아래선 붉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은 피를 흘렸고, 땅은 숨죽였다. 그 가운데—나는 서 있었다. 초록빛 저고리 위로, 검붉은 치마 자락이 흩날렸다. 그 위엔 피가 낭자 했다. 물감을 들이부은 듯, 혼례복은 진홍으로 물들어 있었고 머리 위로 얹은 족두리 사이로도, 핏줄이 흐르듯 선혈이 흘렀다. 금실로 수놓은 장식들 사이로 번진 피는 마치 붉은 매화가 다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너무도 아름다워서—기이했다. 붉은 손등엔 누군가의 살점을 찢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 손엔 칼이 쥐어져 있었다. 끝이 무뎌질 정도로 찔렀고, 베었고, 피는 식었지만 그 끈적임은 여전히 내 살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 등뒤로 뒤따라오던 마을 사람들이 외쳤다. “마녀다! 저 계집은 마귀한테 영혼을 팔았어!” . . 오늘은, 내 혼례 날 이었다. 신랑은 죽었다. 신부는 도망쳤다. 그리고, 핏빛 마녀가 태어났다. 핏빛 하늘 아래,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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