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피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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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모티프로 한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며, 작중 인명, 지명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서사를 쌓아가는 이야기라 스토리 진행은 느릴 수 있습니다. #동양풍 #신분차이 #상처수 #단정수 #병약수 #존댓말공 #다정공 #헌신공 #집착공 (공) 백도겸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한양 제일의 명문가이자, 권세가인 우찬성 신조현 대감 댁에 스스로 노비가 되어 들어간다. 고래등 같은 기와와 대궐 같은 크고, 하인만 수십인 집에 압도 된 것도 잠시, 고요한 작은 사랑채에서 한 폭의 그림같은 사람, 신정윤을 보고 숨 쉬는 걸 잊는다. (수)신정윤 대대로 고위 문관을 배출한 명망 높은 신씨 가문의 장자이자, 모든 걸 다 가진, 고고한 한 떨기 꽃같은 사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숨긴 채 대궐 같은 집에서 마음 둘 곳 없이 발 없는 유령처럼 떠돈다. 어머니를 보내고 도련님을 따라 한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꽃길이었다. 부고 소식을 듣고 세곡으로 올 때만 해도 이제 막 꽃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하던 길에 봄꽃이 만개했다. 거리마다 색색의 꽃이 만발했고, 걸음마다 꽃향기가 가득했다. 그 풍경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데도 슬프지는 않았다. 도련님 손에 매달려 아이처럼 울음을 쏟아내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도 장례를 다 치르고 세곡을 떠나니 한결 몸과 마음은 가뿐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을 나설 때 서로 기대고 의지했던 시간을 모두 내려놓고 왔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겸은 제 앞에 사뿐히 걷는 정윤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이 있었기에 기꺼이 내려놓고 그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정윤의 옷자락을 스쳐 도겸에게 닿았다. 풀냄새와 꽃향기가 섞인 바람이 꼭 어머니의 품 같았다. 잘 자랐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도겸은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앞장서 걷던 정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핀 꽃과 풀잎이 바람에 사라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언젠가처럼 갓끈과 도포자락이 도겸을 향해 흩날렸다. “바람이 좋구나.” “예….” 꽃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그가 저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 같았다. “얼른 오지 않으면 너 혼자 두고…앗!” 두 해 전이었나. 대감마님의 화병을 깨고 함께 공범이 되어 도망치듯 도련님을 따라나선 길에서 지금과 같은 일이 있었다. 저를 보며 뒤로 걷다 발이 걸려 넘어지는 그를 받아냈다. 단단한 팔이 그의 허리에 감기고 단정히 쓴 갓이 훌렁 넘어가면서 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목이 화사한 봄 햇살 아래 드러났다.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보던 그가 잠시 후 꽃망울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일이 떠오른 모양이다. 도겸도 그를 따라 웃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꽃이 흐드러지게 핀 열일곱의 봄날, 도겸은 평생 제 눈앞에 있는 도련님을 위해 살리라 다짐했다. hotbananana82@gmail.com

*조선시대를 모티프로 한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며, 작중 인명, 지명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서사를 쌓아가는 이야기라 스토리 진행은 느릴 수 있습니다. #동양풍 #신분차이 #상처수 #단정수 #병약수 #존댓말공 #다정공 #헌신공 #집착공 (공) 백도겸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한양 제일의 명문가이자, 권세가인 우찬성 신조현 대감 댁에 스스로 노비가 되어 들어간다. 고래등 같은 기와와 대궐 같은 크고, 하인만 수십인 집에 압도 된 것도 잠시, 고요한 작은 사랑채에서 한 폭의 그림같은 사람, 신정윤을 보고 숨 쉬는 걸 잊는다. (수)신정윤 대대로 고위 문관을 배출한 명망 높은 신씨 가문의 장자이자, 모든 걸 다 가진, 고고한 한 떨기 꽃같은 사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숨긴 채 대궐 같은 집에서 마음 둘 곳 없이 발 없는 유령처럼 떠돈다. 어머니를 보내고 도련님을 따라 한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꽃길이었다. 부고 소식을 듣고 세곡으로 올 때만 해도 이제 막 꽃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하던 길에 봄꽃이 만개했다. 거리마다 색색의 꽃이 만발했고, 걸음마다 꽃향기가 가득했다. 그 풍경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데도 슬프지는 않았다. 도련님 손에 매달려 아이처럼 울음을 쏟아내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도 장례를 다 치르고 세곡을 떠나니 한결 몸과 마음은 가뿐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을 나설 때 서로 기대고 의지했던 시간을 모두 내려놓고 왔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겸은 제 앞에 사뿐히 걷는 정윤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이 있었기에 기꺼이 내려놓고 그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정윤의 옷자락을 스쳐 도겸에게 닿았다. 풀냄새와 꽃향기가 섞인 바람이 꼭 어머니의 품 같았다. 잘 자랐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도겸은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앞장서 걷던 정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핀 꽃과 풀잎이 바람에 사라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언젠가처럼 갓끈과 도포자락이 도겸을 향해 흩날렸다. “바람이 좋구나.” “예….” 꽃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그가 저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 같았다. “얼른 오지 않으면 너 혼자 두고…앗!” 두 해 전이었나. 대감마님의 화병을 깨고 함께 공범이 되어 도망치듯 도련님을 따라나선 길에서 지금과 같은 일이 있었다. 저를 보며 뒤로 걷다 발이 걸려 넘어지는 그를 받아냈다. 단단한 팔이 그의 허리에 감기고 단정히 쓴 갓이 훌렁 넘어가면서 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목이 화사한 봄 햇살 아래 드러났다.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보던 그가 잠시 후 꽃망울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일이 떠오른 모양이다. 도겸도 그를 따라 웃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꽃이 흐드러지게 핀 열일곱의 봄날, 도겸은 평생 제 눈앞에 있는 도련님을 위해 살리라 다짐했다. hotbananana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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