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은 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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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그는 나와 지나칠 정도로 쏙 빼닮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믿었다. 춥고 배고픈 오두막 생활을 끝내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하지만 그를 따라 도착한 공작가에는, 누추한 나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그의 사랑스러운 진짜 딸 '세린'이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그 아이 옆에서, 흙투성이인 나는 그저 초라한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내 출생의 비밀은 충격 그 자체였다. "네 어미의 취향은 참으로 저질스럽더군. 진짜를 놔두고, 굳이 나와 닮은 '가짜'를 골라 다리를 벌렸으니." 아버지는 감동적인 재회 대신, 싸늘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했다. "덕분에 네가 내 얼굴을 달고 태어났구나. 아주 끔찍하게도 말이야." 그 한마디로 나의 세계는 무너졌다. 어머니는 나에게 유일한 사랑이자 신앙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추악했다. 공작과 닮은 놈을 골라 불륜을 저지른 여자.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저급한 배신의 증거. 나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부정당한 순간, 나는 삶의 의지를 놓았다. "내 귀한 딸 세린을 그 늙은 괴물에게 보낼 순 없다." "……." "네가 대신 가라. 가서 죽어. 그게 네 어미의 죄를 씻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가의 사랑받는 영애 세린. 그리고 그녀를 위해 죽어야 하는 대역인 나. 억울함은 없었다. 더 이상 이 더러운 세상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신랑은 흑마법에 미쳐 여자를 제물로 쓰는 70세의 늙은 황제. 나는 스스로 지옥불에 걸어 들어가는 심정으로 황궁에 도착했다. 하지만, 죽으러 간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늙은 폭군의 목이었다. "주인이 바뀌었다, 공작의 영애." 하룻밤 사이 반란이 일어났다. 피 젖은 옥좌에 앉은 남자. 남쪽 대륙의 지배자이자 반란군의 수장, 칼리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어서 베세요. 어차피 죽으러 온 목숨입니다." 떨림 없는 나의 목소리에,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착각하고 있군." 그가 피 묻은 손으로 내 턱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의연한 나를 보며, 그의 붉은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빛났다. "공작은 황제에게 '제물'이 아닌 '신부'를 바치기로 맹세했을 텐데." "……!" "그러니 죽여 달라 애원하지 마라. 내가 새 황제가 되었으니, 그 맹세는 유효하다."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내 입술을 엄지로 느릿하게 훑으며 속삭였다. "너는 시체가 아니라, 내 황후가 되러 온 거니까." 늙은 노인의 제물이 아닌, 젊고 아름다운 폭군의 아내가 되어버린 운명. 지옥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내가 가장 고귀한 황후의 관을 쓰고 나타나자, 나를 비웃던 세린의 얼굴은 질투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내 자리야! 원래 내가 가기로 했던 자리라고!" cloud0_088@naver.com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그는 나와 지나칠 정도로 쏙 빼닮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믿었다. 춥고 배고픈 오두막 생활을 끝내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하지만 그를 따라 도착한 공작가에는, 누추한 나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그의 사랑스러운 진짜 딸 '세린'이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그 아이 옆에서, 흙투성이인 나는 그저 초라한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내 출생의 비밀은 충격 그 자체였다. "네 어미의 취향은 참으로 저질스럽더군. 진짜를 놔두고, 굳이 나와 닮은 '가짜'를 골라 다리를 벌렸으니." 아버지는 감동적인 재회 대신, 싸늘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했다. "덕분에 네가 내 얼굴을 달고 태어났구나. 아주 끔찍하게도 말이야." 그 한마디로 나의 세계는 무너졌다. 어머니는 나에게 유일한 사랑이자 신앙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추악했다. 공작과 닮은 놈을 골라 불륜을 저지른 여자.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저급한 배신의 증거. 나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부정당한 순간, 나는 삶의 의지를 놓았다. "내 귀한 딸 세린을 그 늙은 괴물에게 보낼 순 없다." "……." "네가 대신 가라. 가서 죽어. 그게 네 어미의 죄를 씻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가의 사랑받는 영애 세린. 그리고 그녀를 위해 죽어야 하는 대역인 나. 억울함은 없었다. 더 이상 이 더러운 세상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신랑은 흑마법에 미쳐 여자를 제물로 쓰는 70세의 늙은 황제. 나는 스스로 지옥불에 걸어 들어가는 심정으로 황궁에 도착했다. 하지만, 죽으러 간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늙은 폭군의 목이었다. "주인이 바뀌었다, 공작의 영애." 하룻밤 사이 반란이 일어났다. 피 젖은 옥좌에 앉은 남자. 남쪽 대륙의 지배자이자 반란군의 수장, 칼리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어서 베세요. 어차피 죽으러 온 목숨입니다." 떨림 없는 나의 목소리에,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착각하고 있군." 그가 피 묻은 손으로 내 턱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의연한 나를 보며, 그의 붉은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빛났다. "공작은 황제에게 '제물'이 아닌 '신부'를 바치기로 맹세했을 텐데." "……!" "그러니 죽여 달라 애원하지 마라. 내가 새 황제가 되었으니, 그 맹세는 유효하다."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내 입술을 엄지로 느릿하게 훑으며 속삭였다. "너는 시체가 아니라, 내 황후가 되러 온 거니까." 늙은 노인의 제물이 아닌, 젊고 아름다운 폭군의 아내가 되어버린 운명. 지옥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내가 가장 고귀한 황후의 관을 쓰고 나타나자, 나를 비웃던 세린의 얼굴은 질투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내 자리야! 원래 내가 가기로 했던 자리라고!" cloud0_0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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