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브래드와 버번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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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대로만 움직여. 변수 만들지 말고.” 재계 서열 10위, 서유통의 최연소 전무 서준혁. 그에게 삶은 철저하게 통제된 엑셀 시트와 같았다.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서 스스로를 지우며 살아온 그에게 남은 색채라곤, 다 타버리고 남은 건조한 ‘회색’뿐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어느 월요일 밤, 그는 처음으로 규칙을 어기고 핸들을 꺾는다. 목적지는 신율동 골목 끝자락, 간판조차 낡아빠진 위스키 바 ‘Whiskey Over the Rocks’. 그곳에는 주문한 최고급 위스키 대신, 다 터져버린 ‘망한 쿠키’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꿀물 같은 술’을 멋대로 내미는 바텐더 강민우가 있다. “이거 제가 아까 굽다 망친 쿠키거든요. 근데 먹어보면 맛은 기가 막혀요. 망한 주제에 꽤 달거든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가끔은 엉망진창이어도 달콤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상한 사람. *** “…이건 제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 “맞아요.” 민우가 웃었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제가 드리고 싶은 거예요.” 준혁은 민우를 봤다. 그리고 잔을 봤다. 이건 누가 봐도 글렌피딕이 아니었다. “술도 제가 시킨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글렌모렌지 넥타 도르’예요. 이름부터가 ‘황금 꿀물’이라는 뜻이죠.” “…바꿔주시죠.” 평소의 목소리였다. 차갑지는 않지만 단호한. 회사에서 부하 직원에게 지시할 때 쓰는 톤.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연히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다. “싫은데요.” 준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고개를 들어 민우를 똑바로 봤다. 카운터 위 호박색 조명이 민우의 옆얼굴에 걸려 있었다. 땀에 살짝 젖은 이마, 장난기 없이 올곧은 눈동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네?” 비정기 연재입니다. 표지 디자인: 미리캔버스

“매뉴얼대로만 움직여. 변수 만들지 말고.” 재계 서열 10위, 서유통의 최연소 전무 서준혁. 그에게 삶은 철저하게 통제된 엑셀 시트와 같았다.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서 스스로를 지우며 살아온 그에게 남은 색채라곤, 다 타버리고 남은 건조한 ‘회색’뿐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어느 월요일 밤, 그는 처음으로 규칙을 어기고 핸들을 꺾는다. 목적지는 신율동 골목 끝자락, 간판조차 낡아빠진 위스키 바 ‘Whiskey Over the Rocks’. 그곳에는 주문한 최고급 위스키 대신, 다 터져버린 ‘망한 쿠키’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꿀물 같은 술’을 멋대로 내미는 바텐더 강민우가 있다. “이거 제가 아까 굽다 망친 쿠키거든요. 근데 먹어보면 맛은 기가 막혀요. 망한 주제에 꽤 달거든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가끔은 엉망진창이어도 달콤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상한 사람. *** “…이건 제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 “맞아요.” 민우가 웃었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제가 드리고 싶은 거예요.” 준혁은 민우를 봤다. 그리고 잔을 봤다. 이건 누가 봐도 글렌피딕이 아니었다. “술도 제가 시킨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글렌모렌지 넥타 도르’예요. 이름부터가 ‘황금 꿀물’이라는 뜻이죠.” “…바꿔주시죠.” 평소의 목소리였다. 차갑지는 않지만 단호한. 회사에서 부하 직원에게 지시할 때 쓰는 톤.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연히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다. “싫은데요.” 준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고개를 들어 민우를 똑바로 봤다. 카운터 위 호박색 조명이 민우의 옆얼굴에 걸려 있었다. 땀에 살짝 젖은 이마, 장난기 없이 올곧은 눈동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네?” 비정기 연재입니다. 표지 디자인: 미리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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