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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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혼했다.” 권태하의 속내를 읽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우정을 가장해 마주 앉은 시간은 늘 몸에 밴 경기처럼 익숙했으므로. 어디까지 파고들면 위험한지, 어느 거리에서 멈춰야 하는지, 이번 역시 능숙한 거리 조절이 가능할 거라 자만했는데. 그러나 피스트 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첫 번째 찌르기가 아니다. 상대의 의도를 읽었다 확신하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무방비한 찰나. “너 때문에.” 예고도 없이 거리를 좁혀 온 권태하의 칼끝이, 위태준의 심장 한가운데를 정확히 찔렀다. *** 공: 위태준(33). 전 펜싱 에페 국가대표 선수이자 현 실업팀 코치. 십 년 넘게 위태로운 우정을 유지해 왔다. 짝사랑공 -> 철벽공 수: 권태하(33). 정형외과 의사. 권태롭고 당연한 우정이 사랑임을 깨닫고 이혼했다. 무자각수 -> 직진수 *** “이혼하는 데, 애는 없어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으면, 나 너무 소시오패스같냐?” 자동차의 전조등이 권태하의 얼굴을 짧게 훑고 지나갔다. “근데. 어차피 애는 영영 안 생겼을 거다.” “…….” “안 서더라고.”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별 소리를 다 하고 있었다. “근데, 딱 한 번. 네 생각하니까 되더라? 그때 분명히 알았지.” 어느덧 녹색등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우리는 이번 신호를 놓칠 것이 분명했다. “아, 나 위태준 좋아하네.” 그 말에 내가 느낀 건 정확히 뭐였을까. 정답을 찾지 못한 내가 꺼내 놓은 건, 일단은 분노였다. “씨발. 넌 뭐가 그렇게 다 쉽냐?” 나는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사귄 적도 없는 놈을 십오 년이나 좋아했고, 헤어진 적도 없으면서 지난 반년을 이별처럼 견뎌야 했으니까. *** 미계약작 lunar_moon5@naver.com

“나 이혼했다.” 권태하의 속내를 읽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우정을 가장해 마주 앉은 시간은 늘 몸에 밴 경기처럼 익숙했으므로. 어디까지 파고들면 위험한지, 어느 거리에서 멈춰야 하는지, 이번 역시 능숙한 거리 조절이 가능할 거라 자만했는데. 그러나 피스트 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첫 번째 찌르기가 아니다. 상대의 의도를 읽었다 확신하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무방비한 찰나. “너 때문에.” 예고도 없이 거리를 좁혀 온 권태하의 칼끝이, 위태준의 심장 한가운데를 정확히 찔렀다. *** 공: 위태준(33). 전 펜싱 에페 국가대표 선수이자 현 실업팀 코치. 십 년 넘게 위태로운 우정을 유지해 왔다. 짝사랑공 -> 철벽공 수: 권태하(33). 정형외과 의사. 권태롭고 당연한 우정이 사랑임을 깨닫고 이혼했다. 무자각수 -> 직진수 *** “이혼하는 데, 애는 없어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으면, 나 너무 소시오패스같냐?” 자동차의 전조등이 권태하의 얼굴을 짧게 훑고 지나갔다. “근데. 어차피 애는 영영 안 생겼을 거다.” “…….” “안 서더라고.”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별 소리를 다 하고 있었다. “근데, 딱 한 번. 네 생각하니까 되더라? 그때 분명히 알았지.” 어느덧 녹색등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우리는 이번 신호를 놓칠 것이 분명했다. “아, 나 위태준 좋아하네.” 그 말에 내가 느낀 건 정확히 뭐였을까. 정답을 찾지 못한 내가 꺼내 놓은 건, 일단은 분노였다. “씨발. 넌 뭐가 그렇게 다 쉽냐?” 나는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사귄 적도 없는 놈을 십오 년이나 좋아했고, 헤어진 적도 없으면서 지난 반년을 이별처럼 견뎌야 했으니까. *** 미계약작 lunar_moon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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