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을 꺾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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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나는 오래전 연중된 동양 판타지 소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주작과 백호, 청룡과 현무. 사방신의 힘을 잇는 이들이 황실을 받들고, 그들의 힘으로 나라의 안녕을 지키는 세계. 그리고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 하늘이 내려보낸 축복. 쇠한 땅을 되살리고 사방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나타난 존재. 나는 ‘이방인’ 이라 불렸다. 나의 등장을 길조라 여기고,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운명이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곳으로. 그렇게 돌아갈 길을 찾아 헤매던 끝에, 오래된 전설 속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다. "태천제가 이르기를, 타향의 복사꽃은 제 꽃을 피운 이에게 꺾여 본래의 봄으로 돌아가리라." 타향에 핀 복사꽃. 그것이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제 꽃을 피운 이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터. 그리고 그에게 꺾여야만 나는 본래의 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세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그의 손에 죽는 것. ----------------------------------------------------------------------------------------------- 박하연(이방인) 어느 날 낯선 세계에 떨어져 ‘마루’라 불리게 된 여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이곳에 마음을 두게 된다. “나는 그냥 집에 가고 싶은 것뿐이에요.” 연 휘(주작) 붉은 눈을 가진 주작. 무심하고 말수가 적으며, 타인에게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당신을 알고 싶지 않습니다.” 서 진(백호) 부드러운 얼굴 뒤에 냉정한 계산을 숨긴 백호.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데 익숙하고, 사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드리겠습니다.” ----------------------------------------------------------------------------------------------- 연휘가 돌아서려는 하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요즘 그와 자주 지내시더군요.” 하연은 잠시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대답했다. “서진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요.” “…….” 연휘의 손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다. “내게는 할 수 없는 부탁입니까?” 하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네.” 짧은 침묵 끝에 하연이 덧붙였다. “당신에게는 할 수 없어요.”

눈을 떴을 때, 나는 오래전 연중된 동양 판타지 소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주작과 백호, 청룡과 현무. 사방신의 힘을 잇는 이들이 황실을 받들고, 그들의 힘으로 나라의 안녕을 지키는 세계. 그리고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 하늘이 내려보낸 축복. 쇠한 땅을 되살리고 사방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나타난 존재. 나는 ‘이방인’ 이라 불렸다. 나의 등장을 길조라 여기고,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운명이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곳으로. 그렇게 돌아갈 길을 찾아 헤매던 끝에, 오래된 전설 속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다. "태천제가 이르기를, 타향의 복사꽃은 제 꽃을 피운 이에게 꺾여 본래의 봄으로 돌아가리라." 타향에 핀 복사꽃. 그것이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제 꽃을 피운 이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터. 그리고 그에게 꺾여야만 나는 본래의 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세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그의 손에 죽는 것. ----------------------------------------------------------------------------------------------- 박하연(이방인) 어느 날 낯선 세계에 떨어져 ‘마루’라 불리게 된 여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이곳에 마음을 두게 된다. “나는 그냥 집에 가고 싶은 것뿐이에요.” 연 휘(주작) 붉은 눈을 가진 주작. 무심하고 말수가 적으며, 타인에게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당신을 알고 싶지 않습니다.” 서 진(백호) 부드러운 얼굴 뒤에 냉정한 계산을 숨긴 백호.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데 익숙하고, 사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드리겠습니다.” ----------------------------------------------------------------------------------------------- 연휘가 돌아서려는 하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요즘 그와 자주 지내시더군요.” 하연은 잠시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대답했다. “서진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요.” “…….” 연휘의 손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다. “내게는 할 수 없는 부탁입니까?” 하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네.” 짧은 침묵 끝에 하연이 덧붙였다. “당신에게는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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